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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는 의사가 의료기관을 둘 이상 개설하여서는 안된다는 의료법 규정에 위반했다는 이유로 약 75억원의 의료비를 환수한 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보아 그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동일 당사자에 대하여 같은 법원에서 약 2년 전에 의료비 지급보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과 모순된다고 하면서 최근 판결을 내린 위 재판부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관련 기사).

 

그러나 비록 위 두 사건이 동일 당사자에 대한 판결로서 서로 상반되는 취지인 점은 맞지만 재판부는 서로 다르다. 국회도 구성이 달라지면 입법을 달리 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재판부가 다르거나 새로운 주장과 증거가 제출되면 판결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판결 이유를 읽어 보면 여러모로 합리적 근거가 제시되어 대체로 수긍하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본건 판결 대상인 항소심을 수행한 원고 대리인의 입장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피고의 환수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

 

이에 따라 이런 사건과 관련성이 높은 의사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대한의사협회가 발행하는 의협신문에 위 판결의 의의에 관해 기고하여 그 기고문이 지난 10월 11일자로 인터넷 의협신문(Doctor's News)에 게재되었다. 마침 그 직전에 국정감사에서 이 판결에 대한 금태섭의원의 문제제기 기사가 자세히 소개된 점도 고려해서 일종의 해명을 한 셈이다. 필자는 이 기고문에 대하여 주위의 의료인이나 법조인들로부터 다양한 축하와 성원의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게재 후 4일만인 15일 토요일에 갑자기 기사가 삭제되었다.  그래서 기사 내용을 읽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서 기고문 파일내용을 그대로 첨부하여 공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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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지난 5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번 판결은 기존 대법원(201272384) 서울고법 판결(201457449) 정반대의 결론으로, 같은 법원에서 판사에 따라 모순된 내용을 선고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피력했다.
(
관련기사 닥터스뉴스http://m.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005).

김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 의원 주장대로 한다면 기존 판결이 선고된 선례가 있으면 어떤 당사자나 판사도 모두 판결을 답습해야 한다는 "이라며 "국회도 구성이 달라지면 기존 입법과 다른 입법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하물며 재판부가 다른 상황에서 다른 판단을 내린 것에 대하여 문제삼는 자칫 사법권 독립에 악영향을 있다" 지적했다.

변호사는 본지에 '서울고법 복수개설기관 요양비 환수 취소 판결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기고를 통해 "서울고법 판결의 의미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 밝혔다.

 

기고문의 내용은 대한의사협회와 의협신문의 입장과 무관합니다

 

  1.     검토대상 판결의 요지

 

서울고등법원 행정2(재판장 이균용)923A병원의 개설자 겸 원장이었던 B의사(원고)가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 처분 취소 청구에 대하여 원고 청구를 기각한 1심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취소하고, 피고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의 환수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20146****, 원고 승소, 이하 본건 판결). 환수 대상은 약 75억원의 요양비이다.

 

2.     의료법 및 건보법상 사무장병원과 복수개설기관에 관한 규정

 

의료법상 의료기관 개설은 면허를 받은 의사나 한의사 같은 의료인 등에 국한하여 허용되고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면허와 명의를 이용하여 개설하는 것은 금지된다(332).  이를 위반하여 비의료인이 자신의 의료시설에 의료인 명의를 이용하여 개설하고 경영하는 의료기관을 이른바 사무장병원이라고 한다. 의료법상 사무장병원 소유자인 사무장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고(8712), 개설명의를 제공한 의사의 경우 면허자격 정지 처분의 대상이 된다(6612). 특히 이런 의료기관은 개설허가 취소나 폐쇄명령의 대상이 된다(6414호의 2). 나아가 국민건강보험법(이하 건보법)상 사무장병원은 정당한 요양기관이 아니므로 요양급여비를 청구할 수 없다. 공단은 건보법상 사무장병원에 요양비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47조의 2). 또한 이미 요양비를 지급받은 사무장병원을 상대로 그 금액을 부당이득으로 징수할 수 있고, 이 경우 실질개설자인 사무장에게도 직접 징수처분을 할 수 있다(5722).

 

그런데 2012. 2. 1.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인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338, 복수개설 금지 규정).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에는 의료법상 사무장병원 개설자와 동일하게 처벌된다(8712). 한편 의료기관 개설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장관등 행정기관의 허가나 신청수리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 개설자로 등록된 의료인의 복수 개설 신청인지 최초 개설인지가 파악된다. 결국 의료인이 실제로이상 의료기관 개설을 하려면 의료기관 개설을 하지 않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를 이용해야 한다. 개정 의료법은 이 역시 금지한다(42, 개설명의대여금지 규정). 다만 개설명의대여금지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이상과 같이 현행 의료법 및 건보법상 사무장병원 개설과 의료인의 복수기관 개설은 모두 금지되지만 그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만 동일하고, 의료인면허 정지, 건강보험 요양비의 지급보류나 환수 등 제재에 관한 규정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3.     동일 유사 사건에 대한 엇갈린 판결의 평가

 

이와 같이 법률 규정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복수기관개설자의 요양비를 공단이 지급보류하거나 환수 처분을 할 수 있을까. 이에 관해서는 아직 명시적인 대법원 판결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서울고등법원의 재판부들은 본건 판결 당사자인 A병원 B원장에 대하여, 2년 간격을 두고 엇갈린 판단을 하였다. 즉 요양비 지급보류 처분에 대하여는 2014. 12. 23.에 정당하다고 판결한 반면에(행정4, 20145****), 요양비 환수 처분에 대하여는 2016. 9. 23에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행정2, 20146****). 서로 같은 재판부가 내린 판결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동일한 당사자에 대한 유사한 처분에 대하여 재판부별로 엇갈린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소송사건에 대한 재판은 각 사건별로 당사자나 대리인의 주장과 입증이 다를 수 있고, 나아가 사회사정의 변화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재판부별로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는 물론 적용할 법률에 대하여 서로 다른 해석과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앞선 사건의 재판 결과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면 선행 사건의 패소한 당사자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후행 재판사건의 재판부로서도 기계적 역할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헌법재판소 조차도 최근에 약 3년의 간격을 두고 통근재해를 산업재해에서 제외한 법률 규정의 위헌 여부에 대하여 정반대의 판결을 내리기도 하였다이와 같이 재판부에 따라 동일한 사실이나 법률에 대하여 서로 다른 평가를 하는 일을 모두 부당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4.     본건 판결의 의의

 

본건 판결의 당사자 B원장은 선행사건인 원고 패소 판결에 대하여 상고를 제기하여 대법원에서 심리가 진행중이다. 즉 선행사건에 대한 원고 패소 판결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행사건의 재판부가 무조건적으로 선행판결의 결론과 동일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하면 이는 헌법상 보장된 사법권 독립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헌법상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 즉 재판은 그 어떤 외부적 압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그 재판의 자료(당사자의 주장과 증거) 및 법률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지 확정되지 않은 선행사건 재판부의 결론에 순응해야 하는 건 아니다.

특히 사법권의 독립은 입법부나 행정부 등 타 국가기관의 간섭이나 영향력 행사로부터 보장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서도 국정감사는 진행 중인 재판 사건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8). 사법권 독립이 국정감사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규정이다.

본건 판결에 대하여는 패소한 피고 공단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여 그 시정을 구하면 된다. 선행 판결에 패소한 원고 B원장은 상대방 피고 공단에 비하여 경제적으로나 정보면에서 열악한 지위의 약자이다. 그럼에도 선행 판결에서 패소했다는 이유만으로 무려 75억원이 넘는 환수처분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이미 앞에서 자세히 보았듯이 현행 의료법과 건보법은 명백히 사무장병원과 복수개설기관에 대한 제재수준에 차이를 두고 있다. 본건 판결은 이런한 법률규정의 차이에 주목하여 복수개설 기관에 대한 요양비 지급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도, 사무장병원에 대하여는 그와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하였다.  의료기관은 건보법상 요양기관으로 당연히 지정되고 이를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래전부터 불법으로 취급된 사무장병원과 달리 대법원 판결에 의해서 지난 십여년 이상 적법한 것으로 간주된 복수개설기관에 대하여 그 개설취소 절차도 없이 요양비 지급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의료법에서도 사무장병원에 대하여는 개설취소 대상이라고 명시하였으나 복수개설 기관에는 이런 제재 규정을 두지 않았다.

공단은 사무장병원과 달리 복수개설 기관에 요양비 지급을 보장하면 복수개설금지 규정의 실행이 어렵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복수개설 기관의 개설자는 징역이나 벌금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그 처벌 이후에 의사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의료기관 개설자격이 상실된다. 당연히 복수개설은 물론이고 단하나의 의료기관도 개설할 수 없는 중대한 제재가 가능하다. 이보다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면 사무장병원에 대하여 법률로 명시해서 개설허가 취소를 규정한 것처럼 추가 제재 규정을 도입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법률에서 다르게 규정된 것을 외면하고 획일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평등원칙에도 위반된다.

요약하자면 이제까지 대법원이 복수개설기관에 대하여 요양비 지급을 할 수 없다는 명시적 판결을 선고한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일부에서 제시한 대법원 판결(201272384)은 사무장병원의 경우 요양비로 받은 것이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는 판결이지 복수개설 기관의 요양비 환수가 적법하다는 판결이 아니다. 본건 판결도 역시 사무장병원의 요양비는 공단에 지급의무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의료법과 건보법 규정에서도 사무장병원과 복수개설기관에 대한 제재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는 점을 고려해서 그 환수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비록 동일 당사자에 대한 선행판결에서는 지급보류 처분이 정당하다고 했지만 이에 대하여는 상고심이 진행 중이므로 상고심이 최종적인 법해석을 통하여 합리적인 분쟁해결의 기준을 정립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럼에도 후행 판결이 선행 판결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판결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재판부를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자칫하면 사법권 독립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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