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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법원 최신 판결 - 쟁점과 사건 경과

 

2년 반 전에 작성한 글에서 기대했던 것처럼 대법원은 2019. 5. 30에 파기환송 판결을 통해서 중복개설 의료기관(이하 중복개설병원)의 의료비 지급을 거부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 혹은 피고)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본 일부 하급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았다.  대상판결(2015두36485 진료비 지급보류 정지처분 취소)의 원고 P(이하 원고)는 다른 의료기관 B 등의 개설자인 동료의사 갑이 투자하여 개설된 A병원의 원장으로 고용되어 수행한 진료에 대한 비용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A병원이 의료법상 의사는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는 규정(33조 8항)에 위반되어 개설된 병원이라는 이유로 의료비 지급을 거부하였다. 원고는 서울행정법원에 공단의 지급거부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하였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기각당했다. 원고는 피고의 지급거부 처분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4년 이상이 지나서 드디어 대법원은 피고의 거부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하면서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여 새롭게 판단하도록 환송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아울러 대법원은 같은 날 같은 재판부(특별3부)에서 선고된 별도의 판결(201656370 요양급여 환수처분 취소)을 통해서 원고의 진료비를 환수한 피고의 처분을 취소한 서울고법 판결에 대한 피고 공단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로써 중복개설병원의 진료비 청구권에 대하여 외견상 상반되는하급심 판결은 대법원에 의해서 통일적으로 해결되었다.

 

그동안 이른바 사무장병원으로 알려진 무면허자 개설 의료기관의 경우 개설 자체가 무효라는 전제에서 의료비 청구를 할 수 없다고 본 판결이 확립되어 있다. 반면에 이번 사례와 같이 동일 의사에 의한 중복개설병원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의료비 지급 청구가 불가능한 것인지 논란이 있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서 사무장병원과 중복개설병원의 차이점에 주목하여 중복개설병원의 경우 의료비 지급 청구가 가능하다는 최종 판단을 선언한 것이다.

 

2. 대법원의 판단 근거와 향후 전망

 

대법원은 중복개설병원의 의료비 지급 거부 처분의 적법 여부를 심사하면서 그 판단의 기준을 처분의 근거가 된 국민건강보험법(이하 건보법) 규정 내용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즉 건보법 규정에서 그 설립방식 등을 예상한 정도의 요양기관[의료법상 의료인 등이 개설한 의료기관 등]이라면 당연지정제도의 취지상 진료 및 그에 대한 보수 청구 과정에 허위나 과장이 없으면 진료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 비하여 의료법은 국민에게 수준높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통한 건강증진이 목적인 법으로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의료인, 의료기관, 의료행위 등에 대하여 적정한 자격이나 설립기준, 허용한계 등을 규정하고 있다.  건보법과 의료법은 적용 대상이나 입법목적이 다르다. 그런데 피고 공단은 의료법 규정을 위반한 의료기관이면 건보법상 진료비 청구를 받을 수 있는 요양기관이 될 수 없다는 매우 단순하고 기계적인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의료법위반에 대하여는 그에 대한 엄중한 형사처벌 및 의사면허 박탈 등 행정제재 규정등이 확립되어 있고 그 규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제재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법 규정을 위반해서 의료기관을 개설한 사실 자체만으로 당연히 의료비 청구가 부인되는 건 아니다. 건보법은 건보법 자체에서 예정한 거짓 청구와 더불어 아예 처음부터 개설자격이 없는 자[무면허자]에 의해서 설립된 의료기관은 설립자체가 당연무효라고 볼 정도로 중대한 위법성을 고려해서 그 의료행위에 대하여 보수 지급의 가치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무면허자에 의해 개설된 사무장병원의 진료비 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의료법위반 의료기관의 유형을 사무장병원(33 2항 위반), 중복개설기관(33 8항 위반), 명의차용개설기관(4 2항 위반)으로 분류하고, 이에 대하여 의료법 자체에서 제재나 금지를 하되 차등을 두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즉 사무장병원 실질 개설자인 사무장이나 중복개설 금지 위반 의사의 경우 중한 처벌(8712호, 5년 이하 징역 등)이 동일하고, 사무장병원 개설에 협조한 명의상 개설자 즉 사무장에게 고용된 원장의 경우에도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다[90조, 300만원 이하 벌금]

 

그에 비하여 중복개설기관의 명의상 개설자 즉 이 사건 판결 원고와 같은 당사자의 경우에는 위 사무장병원의 고용원장에 대한 처벌과 같은 처벌규정이 없다. 나아가 명의차용개설기관의 경우 금지 규정은 있으나 명의차용자인 실질개설자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다즉 의료법 자체에서 이미 사무장병원과 중복개설병원의 위법성 정도에 대하여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이고 특히 개설명의자의 책임에서 그 차이는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그에 비해서 실질소유자인 사무장과 중복개설의사의 처벌이 동일하게 규정되어 있다는 것은 그 실질소유자의 책임은 거의 동등하게 의료법상 중한 위법행위라고 파악한 것이다.

 

대법원은 입법자 내지 법률도 사무장병원의 명의상 원장과 중복개설기관의 명의상 원장을 다르게 즉 전자는 처벌하되 후자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한 것에 주목하였다.  이에 따라 중복개설기관의 명의상 원장이 진료비 지급거부의 법적 책임을 부담하게 되어 있는 기존 공단의 부당이득 징수 처분은 의료법이 예정한 제재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과도한 처분으로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즉 의료법은 중복개설병원의 경우 개설명의자인 원장이 아니라 실질소유자인 중복개설의사가 사실상 영리추구의 주체라는 점에서 사무장병원의 개설자와 동등한 수준의 처벌을 받도록 규정한 것에 비하여 중복개설기관의 명의원장은 사무장병원의 명의원장과 달리, 애초부터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구비한 의료인(실질개설의사인 의료기관 시설 소유자)에 의해서 개설된 기관에 종사하면서 건보법이 예정한 방식대로 진료를 하고 급여를 청구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태도야 말로 의료법상 처벌받지 않은 중복개설기관의 명의상 원장에 대한 일관성 있는 법적 취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피고 공단의 처분이나 일부 하급심 판결은 사무장병원과 유사하게 중복개설기관의 실소유자가 처벌받는 위법행위자라는 점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어찌 보면 자신의 힘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력이 부족해서 월급받는 원장 즉 개설자의 방식으로 고용된 것에 불과한 선량한 다수의 의료인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제재를 부과해 왔다. 이점에서 형사재판등이 진행 중인 일부 네트워크 의료기관의 명의원장들 역시 보호받을 필요가 있고, 향후 그런 취지의 판단이 예상된다.

 

3. 대법원 판결의 시사점과 주의 사항

 

한편 중복개설병원의 의료비 지급거부를 위법하다고 판단한 하급심이나 대법원의 판결은 의료법상 중복개설금지 조항이나 그에 대한 중복개설자의 중한 처벌 규정 자체는 합헌으로 전제하고 있고 오히려 그런 처벌규정이 유효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 위법행위나 그 가담정도가 가벼운 명의상 개설자가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부당이득 징수 처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불필요하다고 해석한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번 판결을 계기로 헌법재판소가 기존 중복개설 금지 규정이나 그에 대한 처벌 규정에 대한 위헌 판단을 신중히 할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의 태도는 의료인이라 할 지라도 중복개설 금지나 위반시 제재 자체는 정당하고 필요하다고 전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급심이나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서 중복개설 병원이 활개를 칠 명분을 주는 것처럼 예상하는 것은 관련 판결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하기 어렵다.

 

사실 그동안 공단이 중복개설기관으로부터 부당이득징수로 환수하거나 미지급한 급여는 사실상 건보법상 허위청구와 무관한 것으로 당연히 지출되어야 하는 의료비이다. 건보공단의 방식대로 처리하면 오히려 진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적정한 진료가 제공되었음에도 건보공단은 그에 대하여 비용 지불을 면제받거나 강제 상환한 것이 되어 건보공단이 부당이득을 누리는 것과 같다.

 

결국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불합리한 공단의 처리방식에 대하여 건보법과 의료법의 목적, 적용대상 및 여러 규정의 의미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통해서 적절한 처리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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