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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피고 건보공단이 상고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청년의사라는 잡지에 또한번 서울고법 환수 취소 판결에 대한 문제제기 기사가 게재되었다. 그 반론을 겸한 기고문을 작성해서 청년의사에서 같은 날 게재하였기에 전재한다.

2019. 6. 4. 추가. 대법원이 이 글의 말미에서 기대한 것처럼 혼란을 바로잡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결국 필자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점이 최고법원의 판결에 의해서 인정된 것이다. 관련 분석과 대법원 판결 소개등을 별도의 글로 소개한다.

 

청년의사 오피니언|칼럼| 2016-10-24 12:59:08

 

 

을이라는 의사가 2012 8월에 동료 의사 갑을 고용해 갑을 개설자로 정해서 A병원을 개설했다. 을 자신은 그 직후에 별도로 B병원을 개설할 예정이었고, 의료법에 의하면 의사는 의료기관 한개만 개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을은 A병원의 의사나 직원 고용 및 장비구매 등 경영을 하고 병원장으로 재직하는 갑에게는 정해진 월급을 주었다. A병원의 진료는 을에게 고용된 원장 갑과 다른 의사들이 수행했고 을은 이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2012 8월부터 2013 12월까지 A병원에서 갑 등의 진료로 인한 총 진료비가 약 75억원(환자본인부담금 포함)이 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3 12월에 위 사실을 알게 되자 의료법에 위반해 개설된 A병원은 요양비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공단이 부담하는 요양비 지급을 보류했다(이하 지급정지처분). 또한 4개월 후에는 이미 받은 진료비를 모두 부당이득으로 판단해서 전액 환수하는 처분(이하 환수처분) 했다. 갑은 을이 A병원을 제3자인 병에게 양도할 때까진료를 하고 받지 못한 수억원의 지급정지처분과 약 75억원의 요양비 환수처분을 취소하기 위해 순차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갑은 지급정지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패소 후 항소했으나 2014 12월경 항소는 기각됐고 갑은 상고를 제기했다. 갑은 그 이후 제기된 환수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패소 후 항소했는데 2016 9 23일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는 갑의 항소를 받아들여 환수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이하 환수취소 판결). 이에 대해 피고 공단이 10 20일 상고를 제기했다.

 

소송의 쟁점과 판결의 요지

 

선행사건인 지급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갑의 항소가 기각된 상황에서 후행사건 재판부는 어떤 근거로 환수취소 판결을 했을까.

 

두 사건의 처분에 적용된 법률은 국민건강보험법상 동일한 규정이다(57 1). 그럼에도 두 사건의 운명을 가른 것은 원고 갑이 환자와 공단으로부터 받은 진료비가 속임수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받은 이익(부당이득)에 해당하는가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선행사건 재판부(서울고법 행정4) A병원의 진료비가 부당이득이라고 보았고, 후행사건 재판부는 A병원의 개설절차가 위법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진료비는 부당이득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이른바 사무장병원에도 유사한 규정이 적용된다는 점을 피고 공단은 강조했다. 의료시설을 소유한 비의료인이 의료인을 고용해 그 의료인 명의로 개설한 의료기관을 일컫는 사무장병원의 경우 그 진료비가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는 점이 대법원 판례에 의해 밝혀져 있다(201272384). 의료법에서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은 물론 의료인의 둘 이상 의료기관 개설도 금지한다(33 2항 및 8). 이에 위반한 경우 동일하게 처벌한다(87 1 2). 피고 공단이 지급정지나 환수 처분을 한 것은 사무장병원 개설과 마찬가지로 의료인의 복수개설도 위법한 행위이므로 진료비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논리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우선 의료법상 개설절차에 위반된 의료기관이라서 진료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 타당한지 살펴보자. 의료법에는 의료기관 개설 요건에 대해 개설자가 의사여야 한다는 점 외에 여러 가지 시설요건이 규정돼 있다(36). 예를 들어 2인 이상 입원실의 면적은 환자 1명에 대해 4.3제곱미터 이상으로 해야 한다(시행규칙 34조 별표 4). 어느 병실 하나가 이런 면적 규정에 위반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해서, 이를 간과하고 개설허가가 된 병원이 개설 이후 실시한 진료에 대해 요양비 전부를 환수해야 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현행 건보법상 모든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서 모든 의료기관은 개설과 동시에 당연히 공단과 보험관계를 맺는 요양기관이 된다. 이에 따라 공단에서 정한 보수만을 환자 및 공단으로부터 받을 수 있고 환자 요양급여 실시의무를 부담한다. 그런데 공단의 논리대로 한다면 개설요건의 경미한 규정 위반이 있더라도 개설의 효력이 상실되어 해당기관이 요양급여 실시 의무를 위반해도 처벌할 수 없어 불합리하다. 즉 건보법상 당연지정제를 함께 고려하면 개설요건 위반 의료기관이라고 해서 쉽사리 개설무효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사무장병원과 같이 개설의 위법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경우에는 개설무효라고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도 현행 의료법이나 건보법에는 사무장병원에 대해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엄중한 제재 처분 규정을 두고 있으나 의료인의 복수개설 행위에 대해서는 그런 규정이 없다. 예를 들어 사무장병원에 개설명의를 제공한 의사의 경우 의료법상 면허자격 정지 처분의 대상이 된다(66 1 2). 특히 이런 의료기관은 개설허가 취소나 폐쇄명령의 대상이 된다(64 1 4호의 2). 건보법상으로 공단은 사무장병원에 요양비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47조의 2). 이미 요양비를 지급받은 사무장병원을 상대로 그 금액을 부당이득으로 징수할 수 있고, 이 경우 실질개설자인 사무장에게도 직접 징수처분을 할 수 있다(57 2 2). 그런데 이런 제재 규정이 복수개설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 대해서는 전혀 없다. 입법부 역시 사무장병원과 복수개설기관의 위법성에 차이가 크다고 인식한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문제의 검토

 

한편 국정감사에서는 동일당사자에 대한 서울고법의 엇갈린 판결에 대해 사법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런데 국회도 구성이 달라지면 종전의 취지와 상반된 입법을 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9 29일에 근로자의 통근재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던 3년 전 결정을 뒤집고 이를 인정하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즉 재판부가 달라지거나 변론내용 혹은 사회사정이 달라지면 재판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선행소송 패소 당사자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이제 외견상 모순되는 두 재판은 모두 대법원의 최종 재판을 받게 됐다. 현행 의료법과 건보법상 사무장병원과 복수개설기관에 대한 법적용상 차이를 대법원이 정리해 분쟁해결의 합리적 기준을 정립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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